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5. 15世 〉9. <부정공>약포공휘일묘표(藥圃公諱佾墓表)
1. 문헌 목록 〉15. 15世 〉11. <부정공>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통정대부성주목사공휘태흥묘표(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通政大夫星州牧使公諱泰興墓表)
1. 문헌 목록 > 15. 15世 >  
10.<부정공>증동몽교관조봉대부죽헌공휘경묘갈명(贈童蒙敎官朝奉大夫竹軒公諱徑墓碣銘)
贈童蒙敎官朝奉大夫竹軒公諱徑墓碣銘 玉川趙公諱徑字敬叔其源出自高麗大將軍璋傳至副正瑜罔僕我朝梅窓大成以校尉恩德不仕公其五世孫也高祖諱怡成均進士自順天移家谷城鑿池種蓮自號蓮潭曾祖諱㫾祖諱時夏果毅校尉考諱有大妣河東鄭氏嘉善戣女公以 明陵甲戌五月二日生性於孝至誠服勤愉婉順志八歲失怙哀慕不己隣里稱之以孝子及長博通經史先致力於小學心近等書曰此固做人樣子爲學指南勵志力行隨分固窮少無外慕專偏慈爲事志物備至恭爲子職病必禱天喪幾滅性廬于墓側哭泣三年如一靡懈地主聞而嘉之欲驗其眞僞猝詣其所嗟嘆而歸除給墓奴戶役服闋早起謁廟哭諱如袒括朔望必展若値暴雨慮或墓階崩頹竟宵不寐晴即往省每當晬辰不許子第稱觴居家而務修齊之道處鄉而戒毀譽之口立志務學以敎子姪致敬謹行以勉後生人皆推而爲師表庭前種竹扁其齋曰竹軒盖取其直也 元陵丙子壽六十三而吿終于三月十三日葬于津村先兆左艮坐原配幸州奇氏濯之女婦德咸備墓在公墓右艮坐擧一男宣命四女鄭甲壽呉希喆鄭某韓思儉孫깈깳女適金壽彭公歿士論齊發請褒于朝 哲宗辛酉 贈童蒙敎官깳亦以孝同時褒贈嗚呼盛矣後孫章燮從余遊久來請其不朽之圖余以癃病辭之不獲遂爲之銘曰唯公孝行鄉無間言原於百行宜其裕昆存順沒寧寔無怨尤我闡幽光昭示千秋 德殷 宋秉璿 撰 증동몽교관조봉대부죽헌공휘경묘갈명(贈童蒙敎官朝奉大夫竹軒公諱徑墓碣銘) 옥천 조공 휘 경(徑)의 자는 경숙(敬叔)이요, 매창공 대성(梅窓公大成)의 五세손이다. 고조 성균진사(成均進士) 휘 이(怡)가 순천으로부터 곡성(谷城)에 이거(移居)하여 못을 파고 연을 심어 스스로 연담(蓮潭)이라 호(號)하였고 증조는 휘 상(㫾)이요, 조는 과의교위(果毅校尉) 휘 시하(時夏)이며, 고의 휘는 유대(有大)요, 비는 하동정씨 가선 규의 따님이다. 숙종 갑술년(一六九四) 五월 二일에 출생한 공은 천성이 효제(孝悌)하여 지성스럽게 어버이를 섬기며 화열(和悅)한 얼굴 빛을 하고서 부모의 뜻을 받들더니 八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슬피 울기를 마지 아니하니 이웃과 마을 사람이 효자라고 말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널리 경사(經史)를 통달하였고 언제나 소학을 외며 말하기를, 이는 사람을 가르치는 지남(指南)이다 하고 뜻을 가다듬고 힘써 행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여 어머님 봉양에 전심하며 뜻과 몸을 갖추어 봉양하여 공순하게 자식의 직분을 다하며 병환이 나시면 반드시 하늘에 기도하고 초상을 당하여는 거의 몸이 상하도록 애통해 하며 三년 시묘를 하루같이 하였다. 이에 현관(縣官)이 듣고 가상히 여겨 그 진실을 보고서 불의에 가서 실상을 보고 차탄하고 돌아와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고 묘노(墓奴)까지 내려주었다. 탈상 후에는 일찍 일어나 사당에 참알하고 제사때는 초상 때처럼 곡읍하며 삭망에 반드시 성묘하였다. 혹 폭우(暴雨)가 오면 묘소를 염려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은대로 곧 성묘하며 매양 수신(晬辰回甲)을 당하여 화려한 잔치를 금하고 가정에서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도를 힘쓰며 향당에서는 칭찬하고 헐뜯는 입을 경계하여 뜻을 세우고 힘써 배워 자질을 가르치고 공경을 다하고 행실을 삼가하여 이로써 후생을 권면하니 사람이 다 추대하여 사표(師表)로 삼았다. 뜰앞에 대를 심고 재호를 죽헌(竹軒)이라 칭한 것은 대의 곧음을 취한 것이다. 영조 병자년(一七五六) 三월 十三일에 향년 六十三세로 별세하니 진촌 선영 왼쪽 언덕에 안장하였다. 배는 幸州奇氏 濯의 따님으로 부덕이 순비(純備)하였으며 묘소는 공의 오른쪽 간좌이다. 一남은 선명(宣命)이요, 四녀는 정갑수(鄭甲壽) 오희철(呉希喆) 정모, 한사검(韓思儉)의 처이며, 손자는 급(깈), 집(깳)이고 손녀는 김수팽(金壽彭)의 처이다. 공이 별세한 후 사론(士論)이 일제히 일어나 포양(褒揚)을 조정에 주청하니 철종 신유년(一八六一)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집(깳) 또한 효행으로써 동시에 포양하고 증직하였다. 아! 후손 장섭(章燮)은 나와 오래 종유하던 사람인데 나에게 그 영구 지계를 요청하니 내가 병이 들었다고 하여 그의 부탁을 사절할 수 없어 이렇게 몇 마디 쓴다. 오직 공의 효행은 惟公孝行 향방에 이설이 없도다. 鄉無間言 백행의 근원이니 原於百行 그 후손이 마땅히 창성하리로다. 宜其裕昆 순하게 살고 편안히 가니 存順沒寧 이 참으로 원망할 허물이 없도다. 寔無怨尤 내가 그윽한 빛을 천양하니 我闡幽光 밝게 천추에 보이노라. 昭示千秋 德殷 宋秉璿 씀
 
1. 문헌 목록 〉15. 15世 〉9. <부정공>약포공휘일묘표(藥圃公諱佾墓表)
1. 문헌 목록 〉15. 15世 〉11. <부정공>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통정대부성주목사공휘태흥묘표(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通政大夫星州牧使公諱泰興墓表)